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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텔리어 이야기 1] 인터미션은 처음이라...
    스토리/호텔리어 이야기 2020. 5. 31. 19:00

    2019년 3월 17일은 평범했지만, 2020년 3월 17일엔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오픈 이래 처음으로 호텔이 문을 닫았다. 사업의 특성상 24시간 365일 돌아가는 호텔 문 앞에는 경찰차가 배치되었고, 호텔뿐만이 아니라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전체가 닫았다.

    2019년 425억명의 관광객이 들렀지만 예고편도 없이 유령도시로 변해버린 라스베이거스... 그리고 그곳에서 원치 않게 들어간 자가격리.

    초반에 쓰나미처럼 주변 친구들 하나, 둘씩 해고를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려웠다... 내가 그 다음 일 것 같았다.

    이웃 호텔은 무려 63,000명의 호텔리어들을 해고했고, 좁디 좁은 라스베이거스 호텔 바닥에 너무 많은 친구들이 직장을 잃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릴 적 꿈이라 마냥 달려왔던 호텔리어의 삶... 하지만 내가 몸 담고 있는 이 업계는 코로나 사태에 가장 취약한 업종 중 하나였다.

    이게 끝이라면 난 무엇을 해야 할까? 지난 17년을 살았던 라스베이거스에 있을 이유도 사라진다. 그럼 나는 어디에 살아야 할까?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가?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여지껏 어떻게 살아왔는지... 처음의 열정은 어디 갔는지... 남은 삶을 hotel operation에서 보낼 수 있을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문득 드는 생각들은 아니었다.

    호텔리어로서 7년차가 되던 3년 전 즈음... 난 슬럼프에 빠졌다.

    어릴 적 꿈이었던 호텔리어...

    너무나 좋았던 일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손님을 대할 때 진심이 사라졌다는 것을 내가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손님의 행동, 말 하나하나에 보람을 느끼고 그 행복에 취해 일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냥 하루하루 반복적인 일을 당연한 듯이 습관처럼 하고 있었다.

    재미없었다. 일하기 싫었다. 사소한 것에 짜증이 났고,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다.

    그래서 그랬던 거 같다. 더 이상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내 글에 진심을 담을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블로그를 끊고 3년이란 시간을 커리어 측면에선 방황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세월을 보냈다.

    코로나 사태동안 다행히 우리 호텔은 모든 직원에게 월급을 보장했고, 재택근무 때문에 바쁘긴 했지만 그래도 뜻밖의 시간 덕에 조금이나마 편한 마음으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또한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Netflix를 보기 시작했다.

    더 이상 볼 게 없어서 찾다 찾다 그냥 틀어서 보게 된 드라마... 이민기 정소민 주연의 이번 생은 처음이라.

    딱히 엄청 재밌지도 않고 그냥 별 생각없이 본 드라마지만 나에게 뭔가 깨달음을 준 인생 드라마가 되어버렸다.

    축구경기의 전반전, 후반전 사이에 있는 인터미션. 시청자에겐 지루한 시간이지만 뒤에서는 많은 일이 벌어지는 그 인터미션을 얘기한 드라마.

    이게 끝이면 어쩌지 하던 내 커리어에 대한 생각이...

    나 역시 호텔리어 인생의 인터미션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짧게 든 생각이었지만, 뭔가 내 인생의 스위치를 켜 준 것 같다 할까?

    앞이 깜깜하던 내 인생에 작은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길다면 길다 할 수 있고, 짧으면 짧은 10년차 호텔리어. 늦었다 생각하면 한없이 늦었지만 빠르다면 빠를 수 있는 그런 시간.

    지금은 내 인생의 인터미션이라 믿기로 했다. 나는 전반전을 돌아보고 후반전을 위한 전략을 세우려고 한다.

    어떻게 세워야하는지, 무엇을 하는 게 정답인지 알지 못한다. 막막하다. 두렵기도 하다. 가장이 되어서 그런지 어깨가 더 무겁다.

    하지만 더 늦지않게 내 길을 찾는 과정을 남겨보려 한다. 넘어지고 굴러도 괜찮다. 다시 일어나서 그냥 꿋꿋이 가보려 한다.

    서툴러도 괜찮다. 나도 인터미션은 처음이니까...

    P.S 계신 곳이 막다른 골목같이 느껴지는 분들, 저와 함께 후반전을 맞이해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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